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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질문과 답변"은 우리의 뿌리나 종중사 전반에서 궁금한 문제에 대한 해소를 위한 공간입니다>

 
작성일 : 11-04-22 16:16
문간공 스승, 윤근수 선생은 ?<서울 마포 成道>
 글쓴이 : 관리자 (211.♡.192.35)
조회 : 1,663   추천 : 0  
문간공 할아버지는 윤근수의 문인이라 하는데 윤근수 선생은 어떤 분이신지요 ?

참으로 좋은 질문을 해 주셨습니다.
문인門人이란 문하에서 가르침을 받는 제자 즉 문하생을 이르는 말로 당시의 교육기관에는 사립의 서당, 서원과 공립으로는 각 고을의 향교, 한양의 학당學堂과 성균관 등이 있는데 문간공 할아버지는 윤근수尹根壽 선생의 서당에서 일차 수업을 받고 사마시司馬試에 합격후 진사進士로 성균관에 입학하신 것 같습니다. 선생의 행장行狀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윤근수(1537 중종 32년-1616 광해군 8년) 선생의 본관은 해평海平, 자는 자고子固, 호는 월정月汀으로 군자감정軍資監正을 지낸 변의 아들이며 영의정을 지낸 두수斗壽의 동생입니다. 퇴계退溪 이황李滉의 문인門人으로 성리학에 밝아 이황李滉, 조식曺植과 학문을 토론했고 성혼成渾, 이이李珥와도 막역한 사이였다고 합니다. 

그는 청백간손淸白簡遜하고 문장이 고아하며 필력筆力이 힘차고 굳세어서 예원藝苑의 종장宗匠이라 일컬어졌습니다. 저서로 사서토석四書吐釋, 마한사초馬韓史抄, 한문질의漢文質疑, 송도지松都志, 조천록朝天錄, 조경창수朝京唱酬가 있고 시호는 문정文貞입니다. 문간공 할아버지께서 거창居昌에 사시던 시절 嶺南士林의 맥을 이어받은 훌륭한 스승을 잘 만난 것 같습니다.

1558년 (명종 13년) 별시 문과 급제후 연천군수 등을 거쳐 1562년 홍문관 副修撰으로 있을 때 기묘사화로 화를 당한 정암靜菴 조광조趙光祖의 신원伸寃을 청하였다가 과천 현감으로 좌천되었고 그 이듬해 총신寵臣 이량李樑이 그의 아들 정빈廷賓을 이조 좌랑에 천거한 것을 형 두수, 박소립朴素立, 기대승奇大升 등이 반대하였는데 이량의 사주를 받은 대사헌 이감李戡의 탄핵을 받아 과천 현감의 자리마져 파직되었습니다.

그 해 9월 영의정 윤원형尹元衡, 우의정 심통원沈通源의 상계上啓로 인하여 죄가 없음이 밝혀져 승문원承文院 검교檢校에 서용되었으나 형 두수가 이조 정랑이어서 취임하지 아니하였습니다.

1565년 홍문관 부교리로 재기용, 이조 정랑을 거쳐 교서관校書館 교리校理로 명종실록 편찬에 참여하였습니다.
그 후 장령掌令, 집의執義, 응교應敎, 동부승지同副承旨, 대사성大司成까지 승진 1573년(선조 5년) 주청부사奏請副使로 명明나라에 가서 종계무사宗系誣事에 대해 해명하였습니다. 경상도 감사, 부제학, 개경유수開京留守, 공조참판을 역임하고 1589년 성절사聖節使로 명나라에 파견, 다시 종계무사에 대해 설명하고  귀국시 대명회전전서大明會典全書를 가져왔고 그 후, 종계변무宗系辨誣의 공으로 황정욱黃廷彧, 유홍兪泓과 함께 광국공신光國功臣에 책록되고 해평부원군海平府院君으로 봉해졌습니다.

1591년 우찬성으로, 정철鄭澈이 건저建儲문제로 화를 입자 그가 정철에게 당부하였다는 대간臺諫의 탄핵으로 형 두수와 함께 삭탈관직削奪官職되었습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예조판서로 재기용되어 문안사問安使, 원접사遠接使, 주청사奏請使 등으로 여러 차례 명나라에 파견, 국난극복에 크게 노력하였습니다.  판중추부사判中樞府事를 거쳐 좌찬성, 판의금부사判義禁府事를 겸하고 1604년 호성공신扈聖功臣 2등에 봉해졌고 1606년 선조가 죽자 왕의 묘호廟號를 조祖로 정할 것을 주장하여 이를 실현시켰습니다.

이와 같이 그는 수신修身을 잘 하고 대도大道를 걸어 나라를 위해 큰 일을 했습니다. 두 분 스승과 제자의 닮은 점이 너무나 많다는 것을 잘 알 수 있습니다.


<종계변무宗系辨誣란 ? > 
국초國初 이래 1584년(선조 17)까지 말썽이 되었던 조선 왕조의 조상이 명나라 서적에 잘못 기재된 것을 고치고자 주청하던 일이다. 명나라 <태조실록>과 <대명회전>에는 조선 왕조의 태조가 고려 권신權臣 이인임李仁任의 아들로 되어 있어 그 동안 여러 번 정정을 요구하였으나 명나라에서는 태조실록은 고칠 수 없다고 거절하였다. 그 후 선조 17년 5월에 종계변무 주청사 황정욱黃廷彧 등을 보내서 그것을 고쳤으며 1587년에는 유홍兪泓이 다시 들어가서 고쳐진 명나라의  대명회전을 가지고 돌아왔다.

참고로 윤근수 선생의 시 한수를 소개합니다.

대동강大同江
부벽루앞에는 흐르는 강물 浮碧樓前璧水長
대동문 밖에 배를 매었네 大同門外繫蘭舟
긴 둑의 풀들은 해마다 푸르른데長堤綠草年年色
나 홀로 봄바람에 지난 날을 생각하네獨依春風憶舊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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