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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질문과 답변"은 우리의 뿌리나 종중사 전반에서 궁금한 문제에 대한 해소를 위한 공간입니다>

 
작성일 : 11-04-22 16:13
신도비에 관하여 (안양 得衡)
 글쓴이 : 관리자 (211.♡.192.35)
조회 : 1,575   추천 : 0  
(2004-05-02 14:25:37, Hit : 531, Vote : 39) 
종중사를 위해 애를 많이 쓰시고 특히 젊은이들에게 우리의 뿌리를 일깨워 주시는 회장님께 감사드리면서 신도비에 관하여 알기쉽게 설명해 주실 것을 부탁드립니다.


국어사전을 보면 신도비神道碑란 " 지난 날, 종이품 이상의 벼슬아치의 무덤 근처 길가에 세웠던 비" 라고 되어 있는 바, 이는 다음과 같이 나눠 설명할 수 있을 것입니다.

신도비는 문헌상으로는 중국의 한漢나라 때부터 등장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고려 충선왕의 명에 의하여 김방경金方慶의 신도비를 세웠다는 기록이 나와 고려말부터 출현하여 조선시대에 널리 확산된 것으로 보입니다.

종이품從二品 이상의 벼슬아치란 비석의 주인공인 비주碑主의 자격을 말한 것으로 이는 법령이나 예제禮制상의 근거는 없지만 불?꿇梁律?건립에 제한을 두었던 것 같습니다. 현직에서 이품이 안 되면 추증追贈의 은전이 있은 후에야 비로소 신도비를 건립하였던 것으로 보아도 잘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신도비는 대개 묘소로부터 200 - 500m 안팎 떨어진 길가나 마을의 어귀에 세워졌습니다. 신도비는 신도에 세우는 비석이란 뜻에서 나온 말인데 신도란 묘소로 향하는 동남향의 길 또는 돌아가신 분의 영혼이 머무는 곳, 이와 관련하여 낸 길로 이 곳이 길가나 마을 어귀가 된 것은 대개 귀한 분의 묘소가 근처에 있음을 알리는 표지로 역할했기 때문입니다. 비석에 비주의 세계世系, 행적, 찬양의 명銘(시詩)을 가득 새겼으므로 고인故人과 그 후손을 홍보하는 기능도 겸한 것이지요. 신도비를 세우는 목적이 결국 비주의 위업, 덕망, 행적을 기리고 이를 아름답게 기록하여 후세인들에게 고인을 잊혀지지 않게 드러내고 신도를 장식하는 것인데 이렇게 하는 것이 조상에 대한 자손들의 효행이며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근본을 잊지않고 그 은혜를 갚는 길이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신도비는 건립을 위한 재물 모으기, 석물石物 운반을 위한 인부동원 등의 폐단도 적지 않았고 고인의 과실(過失)을 감추고 칭송위주로 문장을 수식하는  등 객관성이 결여되고 허울로 비쳐질 수도 있었습니다. 신도비는 대개 고인의 자손, 형제 등 친족이나 문중에서 세우는 것이 일반적이고 국왕의 명命인 교敎를 받들어 나라에서 세우는 봉교신도비奉敎神道碑도 있습니다.

다음은 신도비를 읽는 방법, 즉 신도비문의 구성에 관하여 문간공 할아버지의 신도비를 예로 들면서 알아 보기로 하겠습니다.

첫째, 비액碑額인데 이는 비신碑身의 맨 윗 부분에 " 비제碑題를 간략하게 횡서로 비주를 짧게 소개" 하는 비석의 제목과 같은 것으로 대개 전서篆書로 쓰기에 전액篆額이라고도 하며 건물의 현판懸板과도 같은 것입니다.(예, 文簡公 龍洲 趙先生 神道碑銘)

둘째, 비제碑題는 비액 다음, 서문序文 바로 옆에서 시작하는 글로 비명의 제목이라고 합니다. 비액과 달리 비주의 최고의 품계品階, 훈호勳號나 작호爵號, 관직 겸직 등의 행직行職, 증직贈職을 최대한 나열해서 적는 것이 일반적이고 종서縱書합니다. 비제는 " 신도비명병서神道碑銘幷書 즉 신도비명과 더불어 서를 적는다"고 끝맺음하는 것이 보통입니다. (예, 贈  大匡輔國崇祿大夫 議政府領議政兼領經筵 弘文館 藝文館 春秋館 觀象監事 行 輔國崇祿大夫 判中樞府事兼知經筵事 弘文館大提學 藝文館大提學 知春秋館成均館事 世子右賓客 五衛都摠府 都摠管 贈諡 文簡公 龍洲 趙先生 神道碑銘幷書  * 비제의 서두를 유명조선국有明朝鮮國...으로 시작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명明나라의 속방屬邦인 조선국의 무슨 무슨 벼슬이란 뜻임.)

셋째, 찬자撰者, 서자書者, 전자篆者는 비제를 적고 서序를 쓰기 전에 비문을 지은 사람과 쓴 사람, 비액을 쓴 사람을 기재하고 소개하는 것입니다. (예. 大匡輔國崇祿大夫 議政府右議政兼領經筵事 監春秋館事 許穆 撰, 九世孫 承訓郞 童蒙敎官 彦植 篆書, 十世孫 進士 鍾奭 敬書)

넷째, 서序는 명銘을 쓰기 위해 그 앞에 적는 산문체의 서문입니다. 이는 비문을 짓게 된 동기, 비주의 세계世系, 행장行狀, 특기할 행적, 자손들에 관한 사항 등을 포함합니다. 서序는 명銘에 부수되는 것이지만 당대의 정치, 사회, 문화상 등을 연구하는데는 명보다 더 큰 가치가 있습니다.

다섯째, 명銘은 비주의 일대기一代記를 찬양 요약하는 내용을 담은 운문韻文으로 <이를 새기는 것이 바로 신도비를 세우는 목적>입니다. 이는 대개 5,7언율시言律詩의 절구絶句, 고시古詩로 높은 학식과 문학적 소양없이는 이해할 수 없는 내용이 많고 이 때문에 당대의 저명한 문장가와 학자들이 신도비문의 찬자撰者로 선호되었습니다. (예. 문간공 신도비문의 서와 명은 2003년판 한양조씨대동세보 권1 문헌록 1000페이지의 한글 번역문을 참고바람)

여섯째, 연기年紀는 비문을 짓거나 비석을 세운 연월일로 비제를 유명조선국有明朝鮮國으로 시작했듯이 대개 중국의 연호를 사용했으나 후기에는 조선왕조의 개국기원開國紀元을 사용했습니다.(1910년에 세워진 문간공 신도비는 순종純宗의 연호인 융희隆熙 4년 7월로 표기되어 있음.)

일곱째, 음기陰記 또는 후지後識는 초기에는 신도비가 세워진 이후, 비주의 증시贈諡, 증직贈職, 묘소의 이전, 그 자손에 관한 기록 등으로 비신碑身의 뒷면에 간략히 적었으나 후기에는 신도비문이 길어져 전후좌우면까지 차지하게 된 까닭에 음기를 남길 공간도 사라졌습니다. (예, 문간공 신도비문은 전면에 비액碑額, 비제碑題, 찬자撰者, 서자書者, 전자篆者에 이어 서序가 시작되고 서는 전좌후우前左後右면까지 계속되다가 우측면에 명銘, 연기年紀 그리고 언식彦植, 천식天植, 헌식憲植의 신도비를 기획 감수한 유사有司를 밝히면서 끝남.)

신도비를 보호하기 위한 비각碑閣은 대부분의 비주碑主가 왕실과 지친至親관계이거나 봉교신도비奉敎神道碑인 경우에 아주 드물게 지어졌고 보편적 현상은 아니었습니다.

신도비는 추녀를 갖춘 지붕형태로 비신을 보호하는 비두碑頭, 비문이 새겨지는 비신碑身, 비신을 지면으로부터 보호하는 비대碑臺의 세 부분으로 나눠지는 바, 비신의 글과 서예, 비두와 비대부분의 용, 봉황, 거북, 구름, 당초문, 연화문 등의 조각은 조선시대 비석문화를 대변하는 귀중한 유산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있듯이 신도비에 관하여 이 정도의 예비지식을 가지고 보게되면 전과는 훨씬 다르게 보일 것입니다. 이제까지는 별 관심없이 지나쳤던 신도비라도 앞으로는 주의깊게 읽고 비교하면서 우리의 뿌리를 탐구하는 마음을 가져야 할 것이며 신도비명이나 묘비명墓碑銘의  탁본拓本도 꼭 한 번 해 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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