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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질문과 답변"은 우리의 뿌리나 종중사 전반에서 궁금한 문제에 대한 해소를 위한 공간입니다>

 
작성일 : 11-04-22 16:12
정경부인 안동김씨 할머니에 관하여(어느 종인)
 글쓴이 : 관리자 (211.♡.192.35)
조회 : 1,642   추천 : 0  
마침 12월 14일(음 11월 21일), 가채리 별묘에서 할머니의 기제사를 지냈기에 시의적절時宜適切한 내용이라 생각되나 할머니에 관한 자료가 극히 제한돼 있어서 부족하나마 다음과 같이 정리해보았으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정경부인 안동김씨 할머니는 이조판서를 지내신 효헌공孝獻公 <휘 찬瓚(1543-1599), 자 숙진叔珍, 호 눌암訥菴>의 1자 3녀중 막내 따님이셨습니다. 안동 김씨는 본래 신라 경순왕의 후예로 중시조는 고려 충렬왕 때 일본을 정벌한 제2차 여원麗元 연합군(금포옥대로 유명하신 3세조 양기공良琪公이 바로 이 부대의 부원수였던 기연奇緣이 있음)의 원수였던 충렬공忠烈公 김방경金方慶(1212-1300)장군이며 임진왜란 때 진주성 혈전의 김시민金時敏(1554-1592, 진주 목사牧使, 증 영의정, 상락부원군上洛府院君, 충무공忠武公) 장군도 바로 그 후손입니다. 효헌공은 1568년 문과 급제, 승문원承文院 검열檢閱로 관직을 시작해서 정언正言, 헌납獻納, 지평持平, 집의執義, 응교應敎, 전한典翰 등 삼사三司의 요직과 형조, 이조의 정랑正郞을 두루 역임하고 대사헌大司憲, 대사간大司諫, 대사성大司成, 경기도 관찰사, 예조판서, 이조판서를 거쳐 지돈녕부사知敦寧府事, 우참찬右參贊까지 올랐습니다. 임진왜란 때는 송강松江 정철鄭澈 밑에서 체찰부사體察副使를 역임하고 양호조도사兩湖調度使로 전쟁의 뒷바라지를 하였고 접반사接伴使로 한음漢陰 이덕형李德馨(문간공과 함께 용연서원에 배향되었음)과 함께 명明나라와의 외교를 담당하였습니다. 문장가이면서 경제문제에 밝고 외교적 수완을 발휘한 명신名臣이었습니다. 그 후손들은 490여 년전에 수원에 정착한 이래 현재 수원을 중심으로 서울과 용인 일대에 분포되어 있고 해마다 음 10월 2일에 수원시 팔달구 이의동 두륭리에 있는 효헌공의 묘소에서 시제를 지내고 있습니다.

문정공文正公 미수 허목許穆선생이 쓰신 문간공 할아버지의 신도비명에 의하면 할머니는 아름답고 순하며 부지런하고 삼가서 시부모를 지극하신 효도로 섬기셨고 자랑하거나 사치하기를 좋아하지 않으셨다고 합니다. 문간공 할아버지께서 임금이 싫어해도 바른 길로 직간直諫하기를 좋아하시고 평생을 청렴강직한 삶으로 일관하셨기에 효종, 현종조에서 여러 차레 월봉과 물자를 하사하였으나 책무없이 녹봉을 받는 것은 불가하다 하여 사양하셨던 것으로 보아 할머니의 어려우셨을 내조를 미루어 짐작할만 하다 하겠습니다.

또한 찬성공의 유복자遺腹子이신 시동생 구(1613-1641, 증贈 이참吏參)가 요절하여 동서 경주 이씨와 한 暈痢꼭?하게 되었는데 할아버지께서 김제군수, 전주부윤(1644)으로 나가셨을 때 동반가족이 많다는 아전들의 구설로 관직을 사임하면서까지 조카인 위명威明(1632-1677, 호는 송천松泉, 별시別試 문과후 충청도 관찰사, 대사간, 도승지, 예조참판을 지냈으며 예론禮論에 밝고 명필, 명문장가로 현종의 시책諡冊과 태묘옥책太廟玉冊을 지었음)을 친자식처럼 양육하고 훈도訓導하셨던 것으로 보아 할머니의 엄하면서도 후덕하고 자애로우신 성품을 알 수 있겠습니다. 이 때부터 응교공應敎公(휘 위봉威鳳 1621-1675, 호 녹문鹿門)과 11살 아래인 송천공 4촌 형제간의 돈독했던 우애와 의리가 오늘날 까지 전해져 가채리의 재실齋室도 두 분의 아호를 따서 녹송재鹿松齋라 이름하게 된 것입니다. 

병자호란 후에는 척화신斥和臣에 대한 청淸나라의 처벌요구로 할아버지께서 1650년 4월부터 이듬해 1월까지 의주의 백마산성에 유배중流配中 할머니는 과천果川에서 별세하셨는데 임금(효종)의 특명으로 경기감영京畿監營에서 부의賻儀와 물자를 내려 성복成服과 매장埋葬의 예禮를 치르게 하였습니다.

할아버지께서 적소謫所에서 풀려나 비통한 마음으로 선조인 찬성공, 이참공, 승지공의 성묘 겸 할머니의 묘소를 찾던 끝에 가채리에 처음으로 내 집을 마련한 것이 1652년이었으니 올 해가 351주년이 되는 것입니다. 문간공은 늘 조정에서 드러난 분으로 귀하기는 구경九卿(의정부의 3정승과 6조의 판서)을 넘었으되 할머니는 정치에 관여하지 않았으므로 뒷 날 할머니를 칭찬하시기를 " 아내의 도리로서 예전 사람에게 부끄러워할 바가 없다." 고 하셨습니다.

63세에 할머니와 사별死別하신 후 20년간이나 홀로 지내신 것도 오늘날과는 시대상이 많이 달랐겠지만 할머니에 대한 할아버지의 정분과 그리고 할아버지와 그 며느님인 초계草溪 정씨鄭氏 할머니의 어려우셨음을 짐작케 합니다. 할머니는 1자 3녀를 낳으셨으니 아드님은 응교공이시고 세 분의 사위는 위수衛率 이유식李惟植, 정랑正郞 이돈림李敦臨, 생원生員 이정징李井徵이십니다.

1584년 갑신생甲申生, 1650년 경인졸庚寅卒, 수壽 65세이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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