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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질문과 답변"은 우리의 뿌리나 종중사 전반에서 궁금한 문제에 대한 해소를 위한 공간입니다>

 
작성일 : 11-04-22 16:09
李恒福, 李德馨과 포천과의 인연은
 글쓴이 : 관리자 (211.♡.192.35)
조회 : 1,745   추천 : 0  
(2003-12-09 19:50:54, Hit : 481, Vote : 35)
이항복과 이덕형이라는 본명本名보다는 "오성과 한음" 이라는 별호別號로 더 잘 알려져 있고 친근감이 느껴지는 이 두 분과 포천, 그리고 문간공과의 관계에 대하여는 대략 다음과 같이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다.

이항복(1556년, 명종11년-1618 년, 광해군 10년)의 호는 백사白沙, 본관은 경주. 알성謁聖문과 급제, 여러 요직을 거쳐 영의정이 되었으며 임진왜란때 많은 공을 세웠습니다. 안으로 치열한 당쟁과 밖으로 7년간의 임진왜란을 겪고 내우외환의 수습과 붕당에 가담치 않고 조정調整에 힘쓴 명상名相으로 후에 청백리에 뽑혔고 시호는 문충文忠입니다. 그가 "오성과 한음"의 일화逸話로 유명한 까닭은 오성부원군鰲城府院君에 봉해져서  오성대감으로 불려졌기 때문입니다.

이덕형(1561년, 명종16년-1613년, 광해군 5년)의 호는 한음漢陰, 본관은 광주. 별시別試문과에 급제, 여러 요직을 거쳐 영의정에 이르렀으며 임진왜란때 명明나라에 가서 구원병을 요청하는 등 공을 세웠으며 시호는 문익文翼입니다. 한음과 백사는 죽마고우竹馬故友로서 서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벼슬길을 달려 다 같이 영의정에 올랐습니다. 나이는 백사보다 5살 아래였지만 벼슬길은 늘 한음이 백사보다 한걸음 앞섰고 별세도 한음이 5년 먼저 했으니 인생을 살기로는 백사가 10년을 더 산 셈입니다.

용주龍洲 조경趙絅(1586년-1669년)이 30년, 25년 각각 선배인 이항복, 이덕형과 어떤 관계였는지는 잘 알 수 없으나 세 분은 다 같이 간신 이이첨李爾瞻에 반대한 정의파로서 그의 피해자라는 공통점을 꼽을 수 있겠습니다.
즉, 광해군때 예조판서에 대제학을 겸하고 광창부원군廣昌府院君에 봉해져 막강한 권세를 잡고 생살여탈권生殺與奪權을 마음대로 자행하였던 이이첨과 "대북大北"일파는 8살에 불과한 영창대군永昌大君의 처형處刑과 인목대비仁穆大妃의 폐모론을 주장하였는데 이에 극력 반대하던 이항복은 관직이 삭탈削奪되어 1617년(광해군 8년) 유배지인 함경도 북청北靑으로 가는 길에, 후에 광해군이 듣고 눈물을 흘렸다고 하는, 유명한 다음의 시조를 읊었고 결국 유배지에서 불귀不歸의 객客이 되고 말았습니다.

<철령鐵嶺 높은 봉峰에 쉬어 넘는 저 구름아
  고신孤臣 원루寃淚를 비삼아 띄워다가
  임 계신 구중심처九重深處에 뿌려 본들 어떠리.>

이에 적극반대하던 이덕형 역시 파직罷職되어 용진龍津(현 양평楊平)으로 물러가  국사를 걱정하다 병사하였고 당시 성균관 유생이었던 조경은 이이첨에게 여러 차레 직언直言하였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자 난세
亂世의 과거를 단념하고 거창居昌에 은거했다가 인조반정仁祖反正후에 정시庭試문과에 장원급제하였습니다.

용주는 자신이 직접 포천을 선영先塋으로 선택하여 한양조씨의 포천 입향조入鄕祖가 되었고, 백사는 그의 조부가 처음으로 포천에 정착함으로써 경주이씨의 포천 입향조가 되었습니다. 백사의 묘와 그가 배향된 화산서원花山書院은 포천시 가산면 금현리와 방축리에 있습니다.

이덕형은  포천 자작리의 외가에서 출생하여 신북면 기지리 틀무시(틀못, 기지리)의 봉래蓬萊 양사언楊士彦(1517-1584,문과급제후 함흥,평창,강릉,회양,철원,안변등지의 수령守令을 지냈고 태산이 높다하되 하늘아래 뫼이로다...라는 시조로 유명함)에게 사사私師한 적이 있고 용연서원龍淵書院에 문간공과 같이 배향되었습니다. 포천시 신북면 신평리에 있는 용연서원은 원래 유생 이사상李師相 등이 중심이 되어 용주선생 단독봉향으로 건립할 계획이었으나 남인인 윤선도尹善道를 사면토록 한 용주선생의 상소에 앙심을 품은 老論파의 반대로 중립적 덕망이 있는 한음선생을 같이 모시게 되었습니다.
결국 이 세 분의 사이는 한음의 신도비명神道碑銘을 용주가, 묘지명墓誌銘을 백사가 지은 선후배先後輩이면서 동지同志이고 同鄕이며 서로가 존경하는 관계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세 분을 잘 이해하려면 백사와 한음은 임진왜란과 정유재란(1592-1598)의, 용주는 정묘호란과 병자호란(1627-1636)의 시대배경을 잘 파악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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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항복과 이덕형이 포천과 무슨 관계가 있는 것 같은데 구체적으로 어떤 관계인지
> 그리고 문간공과는 어떤 인연이 있는지 자세히 알려주시면 고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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